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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비가 왔다. 어제 저녁 늦게 산책할 때부터 한 방울씩 내리더니 자정 이후에 쏟아졌다. 시원하게 내리는 비 소리가 경쾌했다. 덕분에 푹 잤고 아침 공기가 맑았다. 더위도 한풀 꺾이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30도를 넘지 않았지만 해가 뜨겁고 습해서 전날보다 땀이 더 잘 나는 날씨였다. 괜히 고생하고 싶지 않아 아무 버스나 타고 종점에서 내렸다. 내일 시험과 동시에 면접도 있어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미용실을 찾아 걸었다. 하지만 모두 예약 운영한다며 당장 이용할 수 없다고 했다. 제일 빠른 시간은 언제냐고 물으니 50분 뒤라고 말하기에 알겠다하고 나왔다. 20분 정도 기다리는 건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시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찾는 선생님이 있느냐'는 질문도 부담스럽다.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 되겠나. 머리는 오늘 자르기만 하면 될 것 같아서 그냥 스타벅스에 왔다. 일기 다 쓰고 전화 돌려 봐야겠다.
콜드브루 그란데 한 잔을 주문하고 신문을 봤다. 민주주의에 관한 사설 글이 명문이라 사진으로 남겼다. 신문을 보다가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면 따로 메모하거나 기록을 남기는데 나중에 다시 보는 경우는 별로 없다. 사진첩에 따로 폴더까지 만들었는데 회색빛 종이에 까만 글자 밖에 없어서 열고 싶지 않다. 신문을 다 보고 글 쓰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2시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짜임새 있는 글을 과연 쓸 수 있을까 싶다. 연습하지 않으면 절대 순발력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 내일은 붙으러 간다는 생각보다 경험하러 간다고 생각하는 게 좋겠다. 논리적인 글 대신 한 편의 이야기를 쓰는 게 그나마 나을 것이다. 오늘 쓴 건 의붓아들을 가방에 넣어 숨지게 한 계모의 생각을 유추해본 글이다.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이나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던져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 사건 자체가 너무 끔찍하고 인간 이하의 범죄자 입장에서 생각하며 글을 쓰니 죽은 아이에게 미안했다. 민법 915조, 시쯔케 등에 대해 쓸 걸 그랬다.
(아래는 오늘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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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남편과 재혼하면서 딸려 온 자식이었다. 그 애를 처음 본 날 제 아빠 뒤에 숨는 모습이 웃겼다. 작은 키에 왜소한 체구 그리고 꾀죄죄한 얼굴. 엄마 없이 자란 티가 많이 났다. 옷도 무슨 거적때기 같은 걸 걸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내 아이들은 선남선녀였다. 인사성도 밝고 뒤로 빼는 것도 없었다. 전 날 아이들에게 '내일은 중요한 자리니까 더 밝고 씩씩하게 행동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찰떡같이 알아먹었다. 비싸고 예쁜 옷까지 입혔다.
나는 내 아이들을 물심양면으로 키웠다. 가진 건 없어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싶었다. 딱 하나, 내가 줄 수 없는 게 있다면 아빠의 사랑이었다. 옛날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행복한 가정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겸사겸사 나도 이혼녀 꼬리표 좀 떼고.
재혼 생활은 무탈했다. 남편은 며칠씩 밖에 나가 돈을 벌고 나는 부업을 하며 양육을 책임졌다. 남편 아이는 여전히 소심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하루가 다르게 크는 내 아이들을 보는 게 즐거웠다. 딸내미는 학교에서 전교회장에 상까지 타왔다. 기뻤다.
이 모든 안정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단 7시간 이었다. 남편 아이가 게임기를 고장 내놓고 자기가 안 그랬다고 대낮부터 아득바득 우겼다. 내 아이들에게 잘못을 덮어씌우려는 모습에 화가 났다. 몇 차례 손찌검을 한 후 꼴도 보기 싫어 지난번에 넣었던 가방에 다시 넣어버렸다. 중간에 냄새가 나서 보니까 용변을 봤기에 더 작은 가방에다 가뒀다.
저녁쯤에야 화가 가라 앉아 가방을 열었다. 밥 먹이고 달래면서 제 아빠에게 엉뚱한 소리 하지 않게 입단속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를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입에는 거품을 물고 있었고 숨을 쉬지 않았다. 식은땀이 났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신고해야 하나? 내 아이들은?'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남편은 멀리 있었고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결국 수화기를 들어 아이가 죽었다고 신고했다. 이후엔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여기 저기 불려 다니며 조사받고 질문 세례를 받았다.
재혼하는 게 아니었는데. 내 아이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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