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수가 적은 편 2020. 6. 25. 21:15

부산에 다녀왔다. 오늘부터 근무라고 해 숙소까지 예약했다. 하지만 내달 1일부터라는 사실을 현장에 가서야 알게 됐다. 집에 올 수 있어 기뻤지만 매몰 비용이 발생했다. 일찍 움직이느라 몸이 피곤했다. 비까지 와서 천근만근이었다. 나를 포함해 몇 명의 최종 합격자들이 대표 방에 모였다. 오전 10시까지라 맞춰 갔는데 내가 꼴등이었다. 다들 정장을 입고 있었던 반면 나는 아니었다. 첫 출근 일에 면접 복장으로 가면 놀림거리가 된다더니. 연봉 협상할 때 대표에게 정장 없냐는 소릴 들었다. 평상시에도 출입처에 갈 일이 많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춰 입고 다니라 당부했다. 다음부터 그러겠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하는 말은 걸러 들어야겠다. 급여 역시 온라인에서 확인했던 것 보다 많았다. 하지만 본부장과의 통화에서 들었던 것 보다 적었다. 후자를 기대했는데 아이패드 프로 두 대 값이 비었다. 한 달에 200만 원도 받지 못 한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경력이 없다 해도 너무 후려치는 것 아닌가. 그 자리에서 바로 거절할 수 없어 동의하고 계약서 작성까지 마쳤다. 근무 시작 일까지 며칠 남았는데 남는 시간동안 다시 생각해봐야할 것 같다.

 

집에 오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장대비가 쏟아졌다. 내려 온 김에 다니든 안 다니든 방은 봐야겠다 싶었다. 일주일 전부터 눈독 들인 오피스텔에 갔다. 집은 깔끔했다. 조금 좁았지만 신축이라 살만 해 보였다. 한 동이지만 세대수가 많아 복도식으로 이어졌는데 흡사 닭장 같았다. 이미 한 번 계약금을 날린 전과가 있어 방만 보고 왔다. 지하철을 타고 부산역까지 가는 동안 200만 원을 계속 되뇌었다. 내 사용료가 '2,000,000 / ' 이 안 된다니. 자존심이 상했다. 날 뽑은 이유가 근성 때문이라더니 확실히 거지 근성은 있어 보이겠다. 그들 눈에 비친 나는 내 주제도 모르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시정잡배 같을 테니. 기차 안에서 오픈톡으로 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받았다. 많이 짜다며 공감해주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기뻤다. 이만큼 나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샤워하고 한동안 누워있었다.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다 중국 요리를 주문했다. 계산하려 일어났더니 하늘이 핑 돌았다. 배가 부르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이 돈 받으면서 일할 바엔 시작도 안 하겠다'고 말하면 기분이 더 좋아질까? 우울한 날이다. Panic! At The DiscoHigh Hopes 조지러 가야겠다.